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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글또 10기 : 삶의 지도

애쿠 2024. 10. 10. 12:30

 

글또를 준비하면서 "삶의 지도" 라는 주제로 글을 쓸 일이 생겨서 정리한 내용이다. 원래는 프라이빗하게 써서 구어체가 많이 섞여있었는데, 이 내용을 정리해봤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요약하면 나를 정의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정의하면서 경계가 희미했던 것들에 대한 경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항상 어중간했고 경계가 희미하고 선택을 미뤘었던... 너무나 길었던 학창 시절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1. 학창 시절(~대학교 초반) : 너무나 어중간했던

학창 시절은 딱히 작성할 내용이 없을정도로 뭐든 어중간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그냥 큰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놓아버리진 않아서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주변 친구들은 나름대로 이름있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서 이때쯤엔 학업 컴플렉스가 있었다. 학부는 컴퓨터과학과를 지원했는데, 컴퓨터과학과를 지원한 것도 딱히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게임을 좋아해서라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런지 1학년 때부터 학부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어중간한 스탠스를 유지하다가 빠르게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는 수능을 다시 볼 준비를 했다. 학업 컴플렉스가 심해져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 상 그런 용기는 내지 못했고, 군대에서 연등시간에 공부하면서 수능 준비를 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남들만큼 공부하는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았지만, 같이 공부하던 파트너가 있어서 나름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다. 상병 때 휴가를 나와서 수능을 보고 나서, ‘아.. 나는 시험을 보는 재주는 없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우습게도 공부하는 환경이 더 안좋았었지만, 2년 전이랑 성적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으로 자기 객관화를 하게 됐다.

 

군대는 공군에 복무했는데, 당시 공군은 복무 기간이 2년이 넘어서 3월에 입대했더니 4월에 제대하게 되었다. 붕 뜬 시간을 놀면서 허비하기보다 학자금을 벌어보고자 1년 휴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1년 동안 학비를 벌어서 1년치 학자금 대출을 전부 갚아버렸다. 하지만 장래를 위한 준비를 했다기보다 어떤걸 해야할 지 몰라서 마냥 돈만 벌고 게임만 주구장창하고 친구만나러 다니면서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까운 시간이었다. 새로운 뭔가에 도전해볼 수 있었던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을텐데...

2. 복학 후 ~ 대학원 : 알을 깬 시기

복학 후에는 1년정도는 적응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기숙사 선정에서 떨어졌고, 집안 사정 상 자취는 힘들어서 심하면 왕복 4시간+ 거리를 다니면서 의욕없이 지냈다. 2학년까지는 기초 전공이 수학적 능력을 많이 요구해 학점은 3점 중반대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큰 관심이 없었던 전공이 결국 발목을 잡아서 3학년 1학기에 큰 학점 하락을 겪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싶어서 고민 하던 중 학교에서 인턴십을 모집하는 걸 보게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민할게 아니었는데 배울게 있을까, 방학 때 왕복은 어떻게하지 등등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가장 많이 성장하고 변하게 된 계기가 이 인턴십을 통해서였다.

 

인턴십을 시작하면서부터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됐다. 인턴십을 지원한 사람들이 대부분 전공에 일가견이 있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도 의욕이 생겨 함께 열심히하기 시작했다. 방학을 불태우면서 한 학기 만에 장학금을 받을 학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당시에 눈에띄는 결과를 얻어서 더 에너지를 얻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4학년으로 진학하는 겨울방학에 송도의 개발회사에 인턴십을 진행하게 됐고, 두 달 간이지만 정말 많은걸 배웠다. 짧지만 실무를 하는 개발자들에게서 학업 수준이 아니라 실무적인 개발을 많이 배웠다. 당시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게 아쉬웠는데, 지나고보니 이때 안좋은 습관이 들었던 것 같다. 개발 방법론과 아키텍처보다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취업 후 이 습관을 고치는데 대략 3년이 걸렸다.

 

4학년으로 진학하면서 담당 교수님을 통해 대학원 진학을 제안 받았다. 그래서 인턴십을 진행했던 회사에 인턴 후 취업을 할 것이냐, 대학원을 진학할 것이냐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공부를 더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1년 간의 연구생 생활을 한 후에, 담당 교수님이 운영하시던 인공지능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 분야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물체 인식 및 탐지였고, 현재 이 분야는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나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발전한 분야다.

 

대학원에서의 기간은 내 삶에서 가장 힘든 기간이었다. 6개월마다 국내 학술지에 논문 한편씩 등재 후 발표, 선후배들과 연구 과제 운영, 교수님 수업 준비 및 시험 준비 및 운영 등등 정신 차리고 보니 졸업 시즌이었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졸업 학기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정말 준비했어야했던 건 결국 취업이었다는 것을.

 

3. 취준 기간 ~ 첫회사 : 가장 힘들었던 기간

박사 진학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대학원 기간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서 졸업 후 조금 쉴 생각이었다. 1년 가까이 무계획으로 쉬다보니, 취업 준비를 해야한다는 압박이 느껴졌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기간에는 말 그대로 연구 올인이었기 때문에 코딩테스트나 이력서 작성, 자기소개서 작성 등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하나도 없었고, 바닥부터 준비했어야했기 때문이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나는 시험보는 재주가 없다. 단순히 공부하는 것은 재밌었지만, 무언가를 통과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시험을 본다는 건 지금도 그렇고 취준 당시에도 너무 어려웠다. 무엇보다 취업 준비는 개발자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워서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수 많은 코딩테스트, 수많은 면접을 통해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튀는 점 하나 없는 수도권 대학의 대학원을 나온 SCI 급 논문 하나 작성하지 못한 어중간한 연구 개발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할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는 사람. 참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전공 분야를 살릴 수 있는 판교의 한 스타트업으로 첫 취업을 하게 됐다. 그러나 긴 취준 기간 이후에 취업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 했다. 회사도 내가 주어진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생각했는지 개발 업무부터 QA까지 다양한 업무를 줬었다. 그러나 어떤 업무에도 잘 뿌리내리지 못해서 나에게나 회사에나 손해를 끼지는 것 같아서 퇴사를 결정했다. 이때도 정말 심적으로 힘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태도도 문제가 있었고 회사쪽에서도 신입사원을 다루기 위한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4. 취준 기간 ~ 첫회사 : 성장통

짧은 기간이었지만 스타트업에서 배운 게 있었다. 내가 인공지능 쪽 연구 개발을 계속한다고 가정했을 때 개발자로서 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연구와 실무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고 나에게 적합한 업무가 아니란 걸 알게됐다. 그나마 경험했던 업무 중 가장 재밌었던 업무는 프론트엔드 업무였다. 반년 정도의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프론트엔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필요한게 뭔지도 알았고 하고 싶은 것도 있다보니 나름대로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마인드로 신입 개발자에게는 집과의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이 중요하다 생각해 1시간 이내 거리인 회사 위주로 지원했다.

 

가산디지털단지와 강남 근처 회사 위주로 지원했고, 가산디지털단지 역 근처의 SI 회사에 합류했다. 그런데 면접 당시 서버 실장님의 마음에 들었던건지, 입사 면담 후 프론트엔드 팀이 아니라 백엔드 팀으로 전환하게 됐다. 그리고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일단 백엔드 업무가 나한테 잘 맞았고, 작은 규모의 팀이었지만 업무 가이드를 해줄 선임 개발자가 있었다. 그리고 실장님으로부터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당시 내가 담당한 서비스는 SKT에서 운영하는 ZEM 서비스였고 액티브 사용자도 제법되는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의 고도화 개발에 참여하면서 백엔드 개발자로 정착할 수 있었다. 다만, 서비스가 6~7년된 레거시 코드를 그대로 안고 있었고 온프레미스에서 운영 중이면서, 이미 100만명의 사용자가 있었기 때문에 SKT 쪽에서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거기다 CI/CD부터 클라우드 인프라, 데이터베이스까지 아무런 기술적 결정권이 없었고, 단순한 리팩토링조차 자유도가 없었기 때문에 기술적 성장의 한계를 느꼈다. 조직적으로도 책임급(7년차+)가 많은 회사라 매니저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기 어려웠다. 회사 내부적으로 안좋은 결정이 나한테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이직을 선택하게 됐다.

 

5. 현재 회사에서 : 스스로 성장하기

최종적으로는 블록체인 서비스 업체인 현재 회사에 백엔드의 리드 역할로 합류했다. 이직 후 약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짧은 기간동안 정말 다사다난했다. CTO 분이 보직 변경되고 새로운 이사님이 오시고, AWS 인프라와 DevOps를 담당하던 팀장이 이직해서 업무 전체를 내가 담당하게 됐다. 그 이후에도 새로운 팀장이 퇴사를 결정했다가 3달만에 재입사하고, FE팀이 모두 퇴사해서 팀을 전부 새로 구성하고, 사업 팀에도 큰 변화가 있었고… 짧은 기간동안 조직에 큰 변화를 겪었다.

 

DevOps 업무를 넘겨받은건 내가 꾸준히 관심을 어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넘겨받은 AWS 인프라와 DevOps 업무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큰 분야였다. 업무를 익히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었지만 최종적으론 AWS, Github과 GitOps, k8s도 어느정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서비스 운영을 직접해보면서 DevOps와 백엔드의 경계도 어느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프론트엔드만 공부하면 혼자서 서비스를 운영/개발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큰 변화를 겪으면서 기술적으로나 매니저로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개발자를 뽑는 기준도 생기고, 면접관도 해보고 조직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짧은 기간에 큰 변화를 겪으며 배운 것 중에서 무엇보다 가치있었던 건 스스로 공부해서 성장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여러 세미나와 세션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앞으로 해나가야할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서비스 개발에서 백엔드 업무가 나한테 제일 맞는 옷이란 걸 알게 됐고, 앞으로 해나가야할 것으로는 트래픽을 다루는 법 - 특히 데이터베이스 쪽을 깊이있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지었다. 아마 올해 남은 기간은 데이터베이스를 파지 않을까? 싶다.

 

6. 앞으로의 목표

내 장기적인 목표는 한 프로덕트의 CTO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가지 길이 있을 것 같다. 현재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이끌거나, 성장하는 프로젝트에 합류하거나, 성공한 프로젝트에서 합류하거나.. 어떤 선택을 해도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아 고민이 많다. 우선은 기술적 성장에 조금 더 핀트를 맞추고 있다. 매니징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관련 세션도 꾸준히 참석 중인데, 최근에 항해 데브랩에서 들었던 향로님의 매니징 관련 세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현재 조직은 안정화되가고 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어떤 것들을 해야할 지 고민이 된다. 서비스 자체의 기술은 안정화가 된 것 같아서, 앞으로 변경 사항이 많아질 서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무엇보다 레거시 코드가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져서 손댈 것들이 많다. 그래서 우선 컨벤션을 새로 잡고, 상황에 맞는 디자인 패턴과 아키텍처를 적용하고, 리팩토링 그리고 테스트 추가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MVP를 기획 중인데, 기능 추가에 대한 작업이 많아 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기술적 동향을 잘 파악하면서 작업해보려고 한다.

 

지나고보니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쩌다보니 장래성이 있는 전공을 선택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적성에 맞는 백엔드 업무를 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기술적 성장이 가능한 조직으로 오게됐고, 어쩌다보니 이직을 선택한 회사가 안정적인 회사라 갑자기 사직될 염려는 안해도 될 회사였고... 운에 따라 흐름을 타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글또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다. 특히 커피챗에 관심이 많다. 현재 구로구또래멘토링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 하면서 멘토로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한달에 한번뿐인 활동이라 아쉬운 점이 많다. 그리고 이런 저런 활동을 통해 매니저로서도 성장하기 위해서 저연차 개발자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조금 더 활동 범위를 넓혀보고 싶다. 앞으로 글또에서의 활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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